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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르포①] 강경진압·백색테러에도 “5대 요구 수용하라”

현지용 기자 l 기사입력 2019-10-23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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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현지용 기자] 경찰의 강경 진압과 복면금지법 발효에도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는 전보다 더욱 타오르는 모습이다.

  

지난 20일 홍콩 구룡반도는 민주화와 자유를 요구하는 외침으로 메아리를 울렸다. 홍콩 시민단체 민간인권전선(民間人權陣線, Civil Human Rights Front: CHRF) 주최로 열린 이번 대행진에는 홍콩 시민 35만 명이 구룡반도의 중심 ‘네이선 로드(Nathan Road)’를 따라 반도 일대를 행진했다. 

 

집회가 열리기 6일 전 경찰은 주최 측인 CHRF의 20일 집회에 불허 결정을 내렸다. 시위 허가 요청 항소심도 기각돼 CHRF는 개인 자격으로 집회를 진행할 것이라 밝혔다. 한국의 지하철에 해당하는 홍콩 MTR은 안전 문제를 이유로 행진 동선 상에 있는 지하철역을 폐쇄했다. 경찰도 집회 당일 구룡반도 일대의 주요 길목에 병력을 배치하는 등 시위대의 집회 진입을 막기 위해 봉쇄조치를 가했다. 

 

하지만 당일 홍콩 시민들의 집회 참여를 막진 못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실시간 홍콩 시위 상황판 지도를 보고 경찰의 위치 및 상황 정보, 현장 상태를 파악해 경찰의 집회 차단 행동을 피할 수 있었다. 행진은 구룡반도 최남단 솔즈베리 공원에서 시작해 캔톤 로드, 네이선 로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다.

  

CHRF와 홍콩 시민들이 다섯 손가락을 보이며 외친 복면금지법 철회 및 ‘5대 요구’(범죄인 인도법 완전 철회, 시위대 폭도 지정 철회, 무력진압 사과 및 독립조사위 설치, 체포 시위대 전면 석방,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및 입법회 보통·평등선거 실시) 구호는 전보다 더욱 격앙된 모습이었다.

  

지난 16일 지미 샴 CHRF 의장이 친중파 괴한들에 의해 쇠망치 공격을 당하고, 사흘 뒤 시위 참여 전단지를 돌리던 21세 남성도 친중파 청년에게 흉기로 찔리는 등 홍콩 민주파에 대한 백색테러가 연달아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로 20일 집회에 참여한 홍콩 시민 모두는 체포의 위험에도 각양각색의 가면과 마스크를 착용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얼굴 모양 가면,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얼굴 가면, 만화 ‘브이 포 벤데타’의 가이 포크스 가면 등 다양한 가면과 마스크들이 등장했다. 미국 성조기, 영국 유니언잭, 대만 청천백일기, 카탈루냐 에스텔라다 등 각양각색의 깃발 및 우산혁명을 상징하는 우산도 행진을 장식했다. 

 

캔톤 로드를 따라 행진하던 도중에는 간이 추모소도 설치돼있었다. 홍콩 민주화 운동 기간동안 의문사를 당했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을 위한 추모 공간이었다. 특히 시민들은 평소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에도 지난 11일 의문사로 발견된 15세 소녀 천옌린(陳彦霖)의 영정 사진 앞에서 짧지만 긴 추모 기도를 올렸다. 

 

  

평화롭게 행진하던 집회는 경찰과 시위대의 대치로 수위가 격화됐다. 중국은행, MTR 등 친중 홍콩 기업들의 상점과 MTR 입구 상당수가 시위대에 의해 파손되거나 방화됐다. 버스정류장과 도로 및 건널목 안전 펜스는 홍콩 경찰의 폭력을 비판하는 낙서와 전단지, 포스트잇으로 반나절 만에 가득 찼다.

 

시위대는 상당수 길목에 인근 공사장 자재나 안전펜스를 떼어내 바리게이트를 쌓았다. 무경대(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 전투경찰이 홍콩 민주화 운동 진압에 투입돼 대대적인 시위대 탄압을 한다는 의혹이 있는 만큼, 전투경찰의 진군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화재진압을 위한 소방차의 진입도 막혔다. 

 

시위가 침사추이·몽콕 경찰서 앞에 이르자 그 양상은 시가전을 방불케 했다. 경찰서로 시위대가 진입하려 하자, 완전 무장한 홍콩 전투경찰은 최루탄과 고무탄을 쏘며 농성전을 벌였다. 경찰서 인근 도로는 최루가스로 자욱해져 마스크 없이 지나가던 시민들이 이를 들이마시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청색 잉크와 최루액을 섞은 살수차도 동원돼 길가에 있던 시민과 취재진을 향해 무차별 난사를 가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홍콩 이슬람 신도들이 있는 가우룽 모스크에도 물대포를 뿌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현지 여론은 홍콩 이슬람 협회에서 지미 샴 CHRF 의장 문병을 간 것에 대한 보복조치라는 비판으로 입이 모아져 있다.

  

프린스에드워드 역은 당일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가장 극심한 장소 중 하나였다. 전투경찰과 시위대의 대치가 최루탄과 고무탄, 화염병과 투석전으로 격화됐다. 전투경찰도 밀려드는 시위대와 화염병 공격으로 긴장이 극에 달하자, 한 때는 본지 기자 및 취재진을 향해 최루탄 발사기와 빈백탄(Bean-bag) 산탄총을 장전해 겨누기도 했다. 

 

시민과 홍콩의 주류 미디어가 시위대를 보는 시각은 매우 달랐다. A씨는 현장 인터뷰에서 “경찰의 폭력을 막고자 보호구를 착용한 것을 두고 시위대가 무장해 폭동을 일으키는 것이라 보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강한 적의를 보였다.

 

지난 20일 홍콩 구룡반도에서 열린 복면금지법 철회 및 5대 요구 수용 촉구 집회 당시 의문사로 발견된 15세 소녀 천옌린(陳彦霖)의 영정 사진에 추모 기도를 올리는 홍콩 시민의 모습. 사진 / 현지용 기자

 

한국의 민주화 운동 당시 故 김주열 열사와 故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A씨는 “그것이야말로 홍콩 시민들이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 이유”라 강조했다. 반면 20일 저녁 네이선 대로의 대형 스크린에서 홍콩 현지 방송이 잡은 주요 초점은 시위대의 기물 파손과 화염병 투척 등이 부각돼있었다. 

 

직접 현지에서 체감한 홍콩 민주화 운동은 평화와 공포가 뒤섞여있었다. 행진과 구호로 드러내는 홍콩 시민들의 정치적 요구와 국제적인 지지 호소는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 물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반면 대로를 가득 채운 행진이 어느 순간 비명과 도망치는 아비규환의 군상으로 변하던 모습은 홍콩 경찰 또는 중국 정부에 의해 실종될 수도, 고문당할 수도, 의문사 당할 수도 있다는 공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가족과 연인, 친구와 함께 시위에 나서는 홍콩 시민들은 지난 5월 이래 현재까지 끊이지 않고 홍콩의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홍콩 시민의 외침에 주목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SW

 

hjy@economicpost.co.kr

시사주간 현지용 취재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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