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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칼럼] 노인 대국으로 향하는 나라, 젊은 노년 가능할까

오세라비 작가 l 기사입력 2019-10-0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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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오세라비 작가


[
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 2018년 765만 명, 2025년 1036만 명, 2030년 1700만 명, 이 숫자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바로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령 인구를 말한다. 2019년 현재 인구 14.8%가 65세 이상으로 ‘고령사회’에 속하며, 5년 후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이대로라면 향후 더 앞당겨질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노인 대국으로 향하는 데 있어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10월 2일은 제23회 ‘노인의 날’이었다. 1997년부터 매년 10월 2일로 ‘노인의 날’ 제정 취지는 노인의 경로효친 사상을 앙양하고,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온 노인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노인의 날’ 제정 취지를 되새겨보니 오늘 날의 고령화 시대 변화에 발맞추지 못한 고루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로효친 사상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노인상이 아니라 삶의 질과 노인들이 스스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제도 정착이 필요한 시기다. 이미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어 노령 인구 대책을 지금 수립해도 늦었으나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

 

고령사회로 질주하는 우리나라의 노인들의 삶의 질은 어떠할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소득을 기준으로 한 노인빈곤율 통계에서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노인자살률 또한 마찬가지다. 노인의 소득과 건강 상태에 따른 차이도 크다. 또 노령 시기도 전기, 중기, 후기에 따라 정책과 서비스가 달라져야 한다. 요즘은 ‘젊은 노년’을 보내는 노인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어, 이들을 대한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개발되어야 한다. 저소득층 노인과 고소득층 노인에 대한 지원도 차별화 되어야 하며, 건강문제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고령 후기 노인들의 재가복지와 시설복지에 대한 서비스, 간병과 간호 문제를 확충해 나가야 하는 등 한국 사회가 고령화 시대를 맞아 준비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무엇보다 노인 스스로 어떻게 노후시기를 살 것인가에 대한 준비와 자세가 필요하다. 100세 시대라지만 노년의 축복일 수도 재앙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누구나 품격 있는 노년의 삶을 보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말이 쉬워 품격 있는 삶이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나이 들어 갈수록 더욱 절감하게 된다. 

 

장수는 재앙이자 축복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노년기가 경제적으로 풍요하든 빈곤하든 품격 있게 노년을 보낸다는 게 도대체 가능하기는 한가라는 의문이 든다. 근력을 유지하며 무병장수하다 100세 즈음에 죽는다? 노인들이 흔히 염원하듯 병치레 없이 살다, 사나흘 앓은 후 잠자다 조용히 숨을 거두는 게 복이다? 주변에 가까이 있는 노인을 돌아보더라도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금전적 여유가 있어도 지병으로 고통 받거나, 먼저 세상을 떠난 혈족에 대한 정신적 충격을 안고 살아가거나, 아니면 빈곤 노인이 되어 근근이 이곳저곳의 도움으로 죽지 못해 연명하거나, 정신이 온전치 못해 거의 사람구실 제대로 못한 처지가 되거나, 현실적으로 노년의 삶이란 품격을 누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끔찍하지만 분명한 노년기의 모습이다. 

 

그렇더라도 생애 말기를 맞아 품위 있는 노후 생활의 영위는 본인의 재산 현황과 가족과의 관계, 사회적 환경, 부단한 자신의 노력이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현재의 노년은 살아온 삶의 결과물이며, 정신적 물질적 축적물로 나타난다. 

 

노년이 되면 불안의 연속이다. 금방이라도 생이 끝날 것 같은 불안과 공포, 그렇기에 더 원초적인 삶에 대한 본능적인 애착과 남은 생에 대한 절실함을 안고 산다. 친구, 친지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한편으로는 슬프지만 또 한편은 타인의 죽음은 타인의 죽음일 뿐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여기며 역설적으로 더욱 삶에 집착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중요한 사실은 평소 얼마나 자신의 내면을 갈고 닦으며 노년을 맞이했느냐에 많은 부분이 좌우된다. 노년의 삶이 간단하지 않고 힘든 것은 나이가 들수록 지켜야 할 것이 훨씬 많다는 데 있다. 재산이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단 한 번의 초대인 인생에 있어 재산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자신의 여건에 맞게 얼마나 만족스럽고 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노년의 삶을 영위하는가에 달렸다. 

 

노인층이 늘어날수록 노인과 노인 간의 격차, 즉 노-노격차도 크게 차이가 난다. 이런 현실에서 금전적으로 부유한 노인이라면 어느 정도는 노년의 삶이 편안할 수 있다. 옛 말을 빌리면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 있듯, 돈으로 해결하면 수월하다. 하지만 노년의 삶이란 결코 돈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풍부하고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으면 있을수록 그들의 노년은,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추어 더 행복하거나 건강하지도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보통의 노인들보다 더 지켜야할 것과 주변의 눈길을 의식해서 행동반경이 위축되거나, 일상이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하다 쓸쓸한 죽음을 맞는 일이 허다하다. 이들은 눈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노년의 삶이 결코 행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필자가 얼마 전에 읽었던 하버드 의과대학과 보건대학 교수인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인간의 노화와 죽음에 대한 솔직하고도 깊은 통찰을 담은 저서였다. 저자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노령에 이르러 한 가지 병으로 죽음을 맞는 게 아니라, 의학의 힘으로 최선을 다해 여기저기 보수하고 기워가며 유지를 하다 신체기능이 종합적으로 무너지게 되면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우리 삶에 있어 가장 끔찍한 것은 모두는 죽는다는 사실이다. 의학과 공중보건의 발달은 인간의 수명 연장에는 축복이나 그만큼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노후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수명이 짧았던 관계로 늙기도 전에 죽어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준비를 미처 하지 못했으나 현재는 고령인구가 급증하면서 노년의 삶에 대한 대처가 얼마나 되었는가를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젊은 노인들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최선은 좋은 삶을 살아가는 노년을 보내는 것이다. 노년의 좋은 삶은 본인의 자세와 노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국가와 기초자치단체가 정교하게 디자인하여 운영하는 정책을 필요로 한다. SW

 

murphy803@hanmail.net

시사주간 오세라비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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